R E V I E W/B O O K S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

셜리. 2021. 3. 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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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읽기 시작하여 책갈피를 꽂아 뒀다가 2021년 비오는 삼일절에 완독함.

 

누구도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p. 58 / 누구도 여자로 태어나지 않는다. 여자가 되는 것이다. (...) 그러나 미국 등지의 페미니스트와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은 여전히 여성 억압의 근본은 역사적일 뿐 아니라 생물학적이라고 믿는다. (...) 거칠고 잔인한 남자들은 사냥을 한 반면(생물학적인 성향 때문에) 여성은 문명을 만들었다는 모권과 '선사'에 대한 믿음은 지금까지 남성계급에 의해 생산된 역사 해석을 생물화하는 것과 같은 꼴이다. 
p.74 / 섹슈얼리티는 여성 개인이나 주체의 표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폭력의 사회적 제도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단 소위 모든 사적인 문제가 계급 문제라는 것을 보여 주더라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개별 여성 주체의 문제가 남는다. (...) 그리고 개별적인 주체의 등장은 성 범주를 파괴하는 것, 성 범주의 사용을 중지하고, 그 범주를 그들의 토대로 사용하는 모든 과학 (실질적으로 모든 사회과학)을 거부하는 것부터 요청한다.

 

  모니크 위티그의 직설적이고 급진적인 면면이 잘 드러난 글이다. 또한 생물학적 여성과 사회적 여성의 역할을 분리하며 남성적 시선으로 신화화된 '여성', '여성성'을 거부할 것을 요구한다. 뿐만 아니라 이를 학문적으로 적용하지 않을 것을 구체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몰아쳤던 탈코르셋의 물결이 코로나 19사태와 백래시 등으로 가라앉고 우리나라에도 '주체적 섹시'의 바람이 불어들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위티그는 '섹슈얼리티는 표현이 아닌 폭력의 사회적 제도다'라고 말했다. 모르면 외우자.

 

 

 

이성애적 사유

 

p.84 / 이성애 담론은 우리가 그들의 용어를 말해야만 말할 수 있다는 선에서, 우리를 억압한다. (...) 이 담론은 우리가 우리만의 새 범주를 만들어 내 가능성을 부인한다. 그러나 그들의 가장 흉포한 행위는 그들이 우리의 육체, 정신에 가하는 끊임없는 독재다.

  이성애라는 단어는 1900년대에 들어서야 만들어졌고, 동성애와 등치시키기 위해 '발명'된 단어다. 이성애적 담론은 우리의 생각, 관념, 가치관을 단순히 제한할 뿐 아니라 압력을 가한다. 가부장제 안의 이성애는 우리의 사고를 자유롭게 풀어두지 못한다.

 

p.85 / 포르노그래피적 이미지, 영화, 잡지 사진, 도시의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들은 담론을 구성한다. 그리고 이 담론은 우리 세계를 기호로 덮고, 의미를 갖는다. 이거은 여성은 지배받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 그것은 우리의 억압(정치, 경제적으로)인 사회 현실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뿐 아니라 억압의 한 측면이고, 우리에게 특정한 힘도 행사한다.

  흔히 스쳐 지나가는 길가의 성매매 업소 광고, 영화 포스터, 유튜브 동영상 중간 중간 나오는 광고까지 여성 억압의 담론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피지배계급임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

 

 

사회계약에 대하여

 

p. 101-102 / 나에게 있어 최초의, 영구적이고 최종적인 사회계약은 언어다. (...) 왜 나는 우리가 이성애적 사회계약을 깨야 한다고 열정적으로 촉구하는가? (...) 우리가 반드시 깨야 하는 것은 이성애다. 잘 만들어진 사회계약이 우리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에 관한 철학적 실험에 기대어, 나는 우리의 동의 없이 우리를 속박하고 있던 의무의 종말로 이끌 역사적 조건, 갈등과 직면한다.
p. 107 / 그 기원이 무엇이든, 사회계약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며 사람들은 그 계약을 이해하고 수행한다. 모든 계약자는 이미 존재하는 계약을 새 용어로 재확인한다. (...) 우리가 더는 루소를 말하지 않더라도, "나는 자유 국가의 시민으로 태어났고, 투표할 권리는 나에게 공적 영역에서 스스로를 정초할 의무를 부과한다. 내 목소리가 그들에게 효과가 거의 없더라도."
p. 108 / 나는 내가 할 일이 이 사회가 나에게 부여한 규칙, 의무, 그리고 제약의 세트를 검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학 전공자로서 재미있게 읽은 파트다. 모니크 위티그는 사회계약론에 의거한 현 사회의 규범이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논리적으로 풀어낸다. 위티그의 사회계약에 대한 논의는 홉스, 로크, 루소에 멈추지 않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남성의 관점에서 배울 수밖에 없었던, 진리처럼 고정된 것이라 여겼던 이론을 페미니스트 레즈비언의 관점으로 다시 읽는 것은 신선하다. 캐나다 사이버대학에서 'Research Methods in Social Science'를 수강했던 때, 지금껏 조사방법론의 핵심을 주창한 것으로 일컬어진 남성학자의 이론과 더불어 페미니즘 관점에서 본 해당 이론의 한계를 함께 배웠다. 한국 학부 과정에서는 아직 어려운 걸까?

 

p. 109 / 위법과 광기는 공통 언어를 말하지 않거나 말할 수 없는 사람들뿐 아니라 규칙과 관습대로 살기를 거부한 사람들의 이름이다.
p. 110 - 111 / 내가 사회계약을 정의하려고 할 때마다 직면하는 문제는 내가 이성애가 무엇인지 정의하려고 할 때마다 생겼던 문제와 같다. (...) 이성애는 사람들의 생각 속에 존재한다. 사람들의 전 생애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그들이 행동하고 움직이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 동성애는 유령처럼 희미하게 나타날 뿐이고 때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p. 115 / 심지어 여성은 자신에게 강요된 것을 원한다고, 그리고 자신을 배제한 사회계약의 일부라고 설득당해 왔다.
p. 117 / 레즈비언은 도망자이고 도망치는 노예다. 도망치는 신부 역시 같은 경우이고 그들은 모든 나라에 존재한다. 

 

  우리가 학습한 사회와 이론은 수많은 남성 학자들에 의해 정의되었다. 사회과학, 인문학을 공부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론의 창시자, 정치학자, 철학자는 모두 남성이었다. 그들로부터 규정된 틀은 우리를 설명할 수 없다. 저들이 만든 '일반적인', '유일한' 세계관만을 학습한다면 우리는 그 밖을 상상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다. 레즈비어니즘은 남성적 명명으로부터의 탈출이다. 

 

 

호모 숨

 

p. 130 - 131 / 프롤레타리아는 스스로를 경제적 계급으로 만들자마자 부르주아뿐 아니라 스스로를 파괴해야만 했다. (...) 계급으로서 스스로를 파괴하기(그렇지 않으면 부르주아는 권력을 유지한다)와 철학적 범주(대타자의 범주)로서 스스로를 파괴하기. (...) 우리가 알고 있는 혁명을 통해서 역사에서 벌어진 것은 대타자(타자들의 범주)는 유일자를 스스로 대체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차례로 구타자들의 대타자가 되는 억압받는 사람들의 커다란 집단은 그때에 가면 유일자가 된다. 이것은 (마르크스 전에) 노예제 문제를 잘 다룰 수 없었고, 여성(대문자 여성, 그 영원한 대타자) 문제를 전혀 다루지 않았던 프랑스혁명에서 벌어졌다. 
p. 134 / 억압받는 자의 변수 아래, 마르크스주의자의 설계를 따라 억압받는 자는 지배자와 마찬가지로 인간이라고,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라고 '최종 승리'가 선언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이 글은 '사회계약에 대하여'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론가로서 위티그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위티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마르크스와 엥겔스, 변증법을 이용하여 현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왔고 레즈비언 정치학이 시작되었는지를 역설한다.  프랑스혁명에서 시민은 남성이었던 것, 독립운동사에서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지워진 것,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 남성 대학생의 전유물로 전해오는 것. 부르주아 계급이 스스로를 파괴하길 기대할 수 없기에 대타자는 계속해서 남는다는 역사적 근거이다. 우리는 해방과 권리가 '주어질' 것으로 간주하며 순진하게 기다릴 필요가 없다.

 

 

관점 : 보편적인 혹은 특수한?

 

p. 141 / '여성적 글쓰기'에서 이 '여성적'은 무슨 의미인가? 이것은 여성을 상징한다. (...) 왜냐하면 '여성'은 상상적 형태이고 구체적인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에 의해 만들어진 오래된 낙인은 오늘날 전투에서 재발견되고 넝마가 된 승리의 깃발처럼 번창했다.
p. 142 / 젠더는 하나뿐이다. 여성. '남성'은 젠더가 아니다. 남성적인 것은 남성적인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것이다. 그 결과 일반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이 있다. 혹은 일반적인 것과 여성성의 표식이 있다.
p. 143 / 주나 반스는 여성적인 것을 일반화함으로써 실험을 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프루스트처럼 그녀는 남성과 여성 캐릭터를 묘사하는 데 아무런 차이를 두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서 그녀는 여성 젠더에서 '암컷 냄새'를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위티그는 '관점 : 보편적인 혹은 특수한?'의 시작 부분에 이 글을 주나 반스의 <스필웨이>를 번역하며 썼다는 것을 밝혔다. 레즈니어비즘에 대한 학문적 관점을 설파했던 앞선 에세이와 달리 이번 글에서는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작가로서의 의견이 담겨 있다. 급진적 레즈비언인 위티그의 젠더에 대한 생각이 명확하고 명쾌하게 서술되어 있다. 

 

p. 146 / 동성애 관련 주제를 포함한 텍스트를 쓰는 것은 도박이다. 그것은 매번 문학 작품을 창조하기를 원하는 작가의 의도에 반해, 주제인 공식적 요소가 의미를 과잉 결정하거나 전체 의미를 독점하리라는 위험을 감수한다.
p. 147 / 상징으로 여겨지거나 정치적 그룹에 의해 채택되면, 텍스트는 그 다의성을 잃고, 한 가지 의미만 갖게 된다.
p. 148 / 적어도 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특수하고 보편적인 시점 모두를 가정해야만 한다. 개인적이거나 구체적인 시점에서 출발하더라도 일반적인 것에 도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작가가 원하거나 의도했던 바와 달리, 동성애 요소가 컨텐츠에 포함되면 그 자체로 운동이나 선언문 등의 상징으로 변할 수 있다는 유의사항을 알린다. 구성이나 장치 등을 제외하고 의미만으로 통용될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한다는 작가로서의 조언이다.

 

 

트로이 목마

 

p. 158 / 낯설고, 관행에 어긋나고, 융화되기 어려워 보일수록 트로이 목마가 수용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p. 163 / 문학에서 말은 그들의 물질성 속에서 독해되도록 주어진다. 하지만 반드시 이해해야 할 것은 이러한 결과를 얻기 위해 작가는 반드시 첫째로 언어를 중립적인 물질, 즉 원재료로 만들기 위해 가능한 한 의미가 없게 축소시켜야 한다. (...) 말을 이용해서, 말에 작업을 할 수 있기 위해서 작가는 반드시 모든 말을 취해서 이들의 일상적인 의미를 빼앗아야 한다.
p. 163 / 작가로서 나는 내 모든 말이 독자에게 마치 그들이 처음으로 읽히는 것처럼 동일한 효과를, 동일한 충격을 준다면, 완전히 만족할 것이다.

 

  소설로 처음 알려진 위티그가 글을 쓸 때 글자와 언어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하는지 역설하는 글이다. 문학은 트로이 목마처럼 은밀하게 독자들의 내면에 침투한다. 위티그는 책 전체에서 감정을 표현한 적이 거의 없는데, 마지막 인용에서 '완전히 만족할 것이다'라고 쓴 것을 통해 그 쾌감이 위티그에게 얼마나 의미있는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서문을 흥미롭게 읽었고, 초반 부분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여겨 잠시 내려두었다. 그러다 사회계약론이 등장하면서 확실히 기초가 있는 읽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지점부터 속도가 붙어 완독할 수 있었다. 레즈비어니즘과 사회학, 정치학, 철학, 글쓰기를 관통하는 이 책은 나의 관심사 중 많은 부분과 겹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리베카 솔닛을 좋아하는 이유는 페미니스트의 관점으로 정치 현실을 짚어내기 때문이다. 솔닛은 활동가로서 동시대적 사건들을 쓴다. 위티그는 솔닛보다 더 신랄하며 50년은 일찍 태어난 사람이고 이론가, 소설가에 가깝다. 여성주의자들의 시선으로 남성에 의한 사건과 학문을 되짚어보는 것은 새로우며 즐거운 경험이다. 더 많이 썼었는데..한 시간 반 동안 쓴 초고가 날아가면서 분량이 많이 줄어들었다.

  번역서이기에 이따금씩 위티그가 쓴 원문은 어떻게 작성되었을까 싶다가도, 영어도 아닌 불어로 쓰였을 원서를 떠올리고는 머리를 빠르게 흔들고 한국어로 다시 한번 읽는 데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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