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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공지영

셜리. 2022. 2. 2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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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소설은 세 번째다. 스무살 땐가 <즐거운 나의 집>을 읽었다. 주인공은 세 번 이혼한 엄마를 두고 있다. 너무나 공지영의 이야기같아서 자전적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작가후기에서 그는 절대 자전적 소설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고등학생 때까지 추리물, 정치 범죄 스릴러를 많이 읽었던 나는 내면을 그토록 섬세하게 표현한 작가에게 놀란다.

재작년에는 <봉순이 언니>를 읽었다. 주인공과 봉순이 언니, 주요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모두 여자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비슷한 시기를 배경으로 한 천명관의 <고래>와 비교했을 때 이토록 다른 시선으로 여성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물론 <고래> 쪽은 참담할 정도로 여성에 대해 모르고 쓴 글이다.

도서관에 아무 책이나 마구잡이로 빌려야겠다 마음먹고 가서 다섯 권의 책을 빌렸다. 한 권은 서문부터 개소리였는데 개소리를 얼마나 하는지 끝까지 읽어볼까 하다가 읽으면 읽을 수록 개소리같아 접었다. 구병모의 <파과>를 읽고, 제인 오스틴의 <설득>을 읽고 이번 <고등어>까지 읽으면서 올해 초에는 최근 도통 읽지 못했던 소설을 실컷 읽었다.


처음에는 90년대 초를 배경으로한 단순한 불륜 연애 소설로 보였는데 챕터를 넘어가면서 이야기가 풀리고 깊어진다. 사실 이 소설에는 대단한 사건도 없고 엄청난 반전도 없다. 문장에 하나하나 힘 준 듯 화려한 느낌도 아니다. 그런데 읽으면서 마음이 참 복잡했다. 후반부로 갈 수록 더 복잡해진다.



우리세대의 일부는 386 세대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그토록 민주화를 노동 해방을 외쳤던 이들이 기득권 자리를 차지하고 민주화 운동을 완장 삼아 꼰대짓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고등어>는 운동권 세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얼마나 혁명적이고 그 성공이 무엇을 가져왔는지 강조하지 않는다. 운동에 참여했던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트라우마를 마주하는지 어떤 죄책감과 회한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비춘다. 그들이 영웅 아닌 사람이기에 겪는 장면과 감정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우리처럼 책장을 한 가지 사상으로만 가득 채웠던 세대가 또 있을까?"

내 책장이 그렇다고 생각했다. 여기 또 있거든요, 하는 약간의 반항심과 동시에 공감이 되었다. 세상 문제가 내 가장 큰 문제인 것처럼 열심히 읽고 공부하고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문제만으로 책장을 채웠다. 앞서간 세대도 같은 일을 경험했구나 싶었다.

혁명과 사명이라는 미명아래 내 삶을 희생시켰던 사람들의 삶은 그 시기를 통과했음에도 마냥 즐거울 수가 없다. 과거는 그들을 붙잡고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게 만들었다. 한강물만 보고도 죄책감을 가졌다는 구절을 보며 우리 운동가들은 얼마나 다른가 생각했다. 운동을 하기 위해 스스로 검열하고 마음 편히 보내도 될 시간에 자신을 옥죄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80년대 운동가들만큼의 공동체 정신과 가족같은 연결감은 없을지 몰라도 자신을 잠식하는 고통의 크기는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글은 전화를 걸고 맥주를 마시고 운전을 하고 낚시를 하는 이어지는 일상을 그리며 주인공들이 공통으로 겪은 일로부터 생겨난 괴로움을 드러낸다. 주인공 중 누구 한 편만 들지 않고 영광이라 알려진 역사의 상처와 이면을 보여준다. 소설 내내 그들의 쓸쓸함과 어지러움이 느껴진다. 불필요한 문장이 없다. 회고하지 않으면서 회고한다.

다른 세대에서 운동을 했던 이들의 과거를 보며 공감하고 동정하고 이해했다. 어쩌면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역사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여성인 작가가 남자를 주인공으로 글을 쓴 것이 내게는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진다. 작가의 깊이가 느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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