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대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수정한 글입니다.
종횡무진 대한민국 아이와 어른의 심리상태를 분석해주는 프로그램으로 방송가를 휘어잡던 오은영 박사가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MBC에서 방영중인 <오은영 리포트 – 결혼지옥>에서 아동 성추행으로 보이는 장면이 송출되었고, 이에 대해 의사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의료기관에서 의료업을 하는 의료인은 아동학대를 알게 된 즉시 수사기관에 신고해야한다는 아동복지법이 비난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비난은 범위를 넓혀 오은영 박사 남편의 사업과 진료비까지 도마에 올린다.
해당 회차에서 오은영 박사는 아동과 출연 남편이 ‘주사놀이’하는 장면을 보면서 눈을 꼭 감고 마른침을 삼키는 등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 장면에 대해서는 문제를 에둘러 표현하고 마는데, 그러한 대처가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듣는 네가 알아차리렴”하는 간접적인 화법은 대화 상대와 주변 청자들에게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고 흩어져버린다. ‘듣는 너’는 못 알아듣고 청자들은 혼란스러워진다. 그러나 발화의 장소가 결혼 생활에 대한 조언을 요하는 프로그램의 촬영 스튜디오라면 화자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런 종류의 것밖에 없다.
오은영 박사가 앉을 테이블이 차려지고 사건과 무관한 패널들이 앉아있고 부부는 아동학대 신고를 하고 당했음에도 이혼 대신 같이 살기를 바란다며 도움을 청한다. 조언자 역할로 출연료 받고 나온 오은영이 욕을 하고 상을 뒤엎고 싶어도 돌아가는 카메라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은 대충 당신이 가엾어요 같은 것일 수밖에.
한편 지난달 아동 성 착취물 제작·거래 사이트인 ‘웰컴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가 범죄수익 은닉에 대한 혐의를 판단하는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2015년 ‘웰컴투비디오’의 정체가 드러난 후 호주, 브라질, 미국, 영국, 프랑스, 아랍에미리에이트 등 32개국이 공조하여 ‘웰컴투비디오’의 불법 촬영물 공급자 및 소지자 337명을 붙잡고 착취당하던 23명의 아동을 구출했다. 웹사이트 폐쇄 전까지 성폭행, 폭행, 수간, 신체 훼손 영상 25만 개는 100만 건이 넘는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했고 이후 검거된 핵심 이용자 310명 중 한국인은 223명이었다.
손정우는 아동·청소년 성 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의 형기를 마친 바 있다. 이건 한국이 전 세계에 주는 메시지 같은 것이다. 청소년을, 아이를, 아기를 납치하고 인신매매하고 성폭행한 영상으로 돈을 벌어도, 그 돈을 은닉해도 3년 6개월만 감옥에 갔다오면 되는 나라. 아동이 친족 간 성폭력을 당하는 장면이 공영 방송을 통해 전파를 타도 되는 나라. 소아청소년 정신과를 운영하는 의사가 무력하게 할 일을 하지 못하게 판을 깔아 두면서 시청률을 빨아먹는 나라. 어린이 성 보호보다 자본이 앞서는 나라임을 공표하는 것이다.
이렇게 돈 좋아하는 나라에서 누가 화장품 사업으로 돈을 벌든 진료비를 20만원 30만원 받든 오히려 칭송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의문도 드는 것이다. 사법 체계가 주는 시그널과 돈만 주면 아동 성 착취물을 사서 봐도 된다고 믿는 웰컴투 비디오 운영자들과 비교하면 자기 장기를 살려서 스킨 로션 좀 파는 게 온갖 온라인 커뮤니티에 박제되고 1,000자 가까운 글로 비난받을 일인지 모르겠다. 똑똑하게 의사 표현을 하고 자신을 지켜내려 한 아이는 안중에도 없고 이거 조회수 대박 찍겠다고 편집본 결재해준 PD와 예능국장은 어디로 숨었는지.
오은영 박사가 물러나면 이거 바뀔까. 아동 성 착취물을 성욕 배출구로 삼는 사람 바뀔까. 당장 아동 성폭력 신고해서 촬영분 모두 없애고 수사기관에 협조하는 방송국이 될까. 오은영 박사 자리에 앉는 사람만 바뀌지 않을까.
공연화 (여성젠더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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