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멈추지 않아서 지겹다고 느낄 때가 있다. 어제는 인터넷에서 PESM 증후군에 대해 읽었다. PESM 증후군은 우리말로 '정신적 과잉 증후군'인데, 생각이 너무 많아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머릿속이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어 감정 기복이 심한 경우를 말한다고 한다. 애초에 생각을 많이 하는 뇌구조로 태어난 사람들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검증된 병처럼 떠돌아다니는 이 증후군은 사실 어떤 책의 저자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며 학문적 질병은 아니라고 한다. 그럼에도 이 증후군에 대해 읽은 사람들이 현재 자신의 상태인 것 같다며 공감을 표하고 있다.
나의 경우 무슨 증후군이라 할 정도로, 글에 명시된 것처럼 잠을 못 자거나 생각때문에 감정 기복이 항상 심하지는 않지만 가만히 걷고 있을 때 너무나도 많은 생각이 떠올라 정리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내 관점에서 옳지 못한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 그것에 대한 내 반박 의견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예를 들면 우리 대학교에는 공무직 노조가 게시한, 정규직 직원들과 같은 처우를 해달라는 현수막이 몇 개월째 붙어 있다. 그런데 공무직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정규직과 같은 처우를 받고 싶으면 같은 방법으로 입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규직 입사자들이 얼마나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여 그 자리를 얻었는지 나열하며 공무직이 같은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공산주의냐는 원색적 비난도 일삼는다.
이는 입시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생의 전환점으로 교육받고 시험만이 공정한 방법이라고 주입받아온 사고방식 때문에 벌어지는 을과 을의 갈등일 뿐이다. 사람들은 주로 시험을 거치지 않고 입사하는 공무직에 '낙하산 인사'가 다수이며, 그렇기 때문에 입사 후에도 업무 태만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자기 주변에서, 직장에서 직접 보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의 경험도 풀어놓아 보겠다. 내가 겪은 공무직 직원들은 정규직과 똑같이 일했으며 오히려 무기계약직이라는 불안정한 비정규직의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오히려 더 열심히 일하는 경우가 다수였다. 이렇게 개인적인 경험으로 전체를 일반화하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짚어봐야 한다. '다수'의 기준은 무엇인가? 시험을 쳐서 입사한 정규직 중에는 태업을 하는 이들이 없는가? 편견에 입각한 의견은 아닌가? 시험은 과연 공정한가?
언론에는 한 달이 멀다하고 권력층이 누군가의 위탁을 받아 취업 비리를 저질렀다는 뉴스가 보도된다. 세간을 뒤흔들었던 강원랜드 사례만 해도 200명 넘는 정규직 직원이 채용 비리로 부정 취업을 했었다. 김성태 전 의원은 자신의 딸을 KT에 부정 채용하도록 청탁했다. LG전자는 유력자 자녀들을 채용하도록 명단까지 만들어 특별 관리해온 것으로 드러나 현재 재판 중에 있다. 한겨레의 취재 결과 지난 5년간 공공기관 58곳에서 최소 278명을 부정 채용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밝혀진 것만 이 정도이니 정규직 채용 역시 공정하지 않다. 공무직 채용에만 '낙하산 인사'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오히려 불공정한 셈이다.
공무직 노조의 핵심 주장 중 하나는 정규직과 다를바 없는 업무를 한다는 것이다. 직원이 1만여명인 공공기관에서도 수많은 공무직을 채용해 업무를 맡기는데, 정규직 직원들이 좀 더 지속적인 사업을 맡는다면 공무직 직원들은 정권이 바뀌면 끝날지도 모르는 사업을 맡는다는 점만 다르다. 그러니 사업의 종류는 다르지만 업무의 강도나 내용은 같을 수밖에 없다. 물론 국가 정책은-특히 지급에 관한 제도는-쉬이 바뀌지 않으므로 사업이 금방 끝나지 않을 것이며, 그 사업이 끝난다 해도 항상 인력이 부족한 회사에서는 이미 기관의 룰을 익힌 이들을 쉽게 해고하지 않고 또다른 사업을 맡길 것이다.
이렇게 같은 업무를 한다면 어째서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할까? 까다로운 채용의 조건, 부족한 일자리는 공무직의 과오가 아니라 인력에 충분한 비용을 들이지 않는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문제이다. '공정'은 지나친 경쟁으로 지친 우리 세대가 기댈 수 있는 그나마의 가치이기 때문에 수호되어야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입사의 방식'만이 공정한 처우의 척도가 될 수는 없다. 정규직 채용과정이 지난하고 복잡하고 과도한 자격증과 시험을 요구하는 것은 적은 자리수를 마련한 채용 기관이 입맛대로 지원자를 굴리는 것일 뿐이지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할 근거가 되기 어렵다.
차별이 너무나 많은 세상에 우리가 바뀌도록 손가락질 해야하는 곳은 차별을 조장하는 권력층이지 이 시장의 약자인 비정규직이 아니다.
까지가 거의 매일 공무직 노조 현수막을 보며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공무직 노조 현수막만 보이는가? 사이비 종교를 믿으라고 전단지를 나눠주는 분들은 항상 60대 아주머니이며, 코로나 예방 수칙 관련 포스터에 여성은 분홍색 옷을 남성은 파란색 옷을 입고 있는 게 보이고, 택시를 타면 집안일을 나눠하자는 라디오 소리에 쌍욕을 퍼붓는 택시 기사가 있다. 부조리를 보면 참거나 그냥 넘기지 못하고 속으로라도 그 대상과 토론을 이어나가는 내가 너무 피곤하다. 그럼에도 항상 이런 생각을 하고 있기에 누군가 버튼을 눌러주면 녹음해뒀던 사람처럼 주루루룩 내 생각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덜 지칠 정도로만 생각을 하면 좋겠다.
'R E V I E W > 글방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은영 박사의 테이블 (0) | 2023.02.01 |
---|---|
커피 맛있는 곳 (0) | 2021.08.13 |
물레와 낮잠 (1) | 2021.05.28 |
블랙홀이거나 호수이거나 (0) | 2021.04.28 |
달콤한 고통을 구매해보았습니다. (0) | 2021.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