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 E V I E W/글방에서

달콤한 고통을 구매해보았습니다.

셜리. 2021. 4. 14.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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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고통을 구매해보았습니다.

2021년 4월 첫 번째_한 번도 좋아해본 적 없는 것 

 

 

  사서 하는 고생을 즐기는 이들이 있다. 대학생 때 자전거를 타고 국토대장정을 했다던 가정 선생님은 씻을 곳이 없어 물티슈로 몸을 닦고 사타구니가 벌겋게 부어올랐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땐 세상이 좋아서 민박집에 사정해 밥이라도 얻어먹었지 너희가 대학생이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 밥은 왠지 흰 쌀밥에 집에서 먹던 김치가 딸려 나왔을 것 같다. 고소하고 쫀득한 밥알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식사였을 것 같다. 맨밥이 맛있는 만큼 허기의 시간도 길었을 것이다. 목은 얼마나 탔을까, 안장에 얹은 허리가 쑤시진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국토대장정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아이패드 화면으로 보는 이구아수 폭포는 가슴이 조금 더 빨리 뛰는 게 느껴질 정도로 멋지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폭포. 근처에 서 있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초당 수천 톤이 흘러넘치는 폭포수 때문에 귀가 멍멍할 것만 같다. BBC에서 만든 다큐멘터리는 이구아수 폭포를 하늘에서도 보여주고 옆에서도 보여주고 확대해서도 보여준다. 뛰어난 영상 덕분에 슬로우 모션으로 잡은 물방울은 눈앞에서 보듯 빛난다. 스물네 살이었던 친구는 500만 원을 들고 남미 대륙을 돌러 가서 이구아수 폭포를 직접 보고 왔다. 가는 동안 10시간짜리 야간 버스를 세 번 탔고, 영어가 통하지 않아 생고생을 했지만 폭포 그 자체는 말로 표현 못 할 가슴 벅찬 곳이라고 했다. 막걸리를 마시며 그 말을 전하는 그는 거의 10킬로가 빠져 양 볼이 홀쭉했고 피부는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나는 해물파전을 그의 앞으로 밀어주며 남아메리카는 BBC에서 더 자주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좀비물이나 호러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요즘은 자극적인 콘텐츠가 대세라 그런지 넷플릭스에는 공포 드라마가 줄줄이 깔렸다. 여가시간에 사람이 지속적으로 죽는 장면을 관람하거나 얼굴이 끔찍하게 할퀴어진 시체가 걸어 다니는 걸 보는 건 정신을 스스로 고생시키는 거나 다름없다. 고생은 가만히 있어도 달 따라 밀물이 밀려오듯 들어오는 것으로 생각했다. 우리는 자신을 혹사시킬 필요가 없고 안온함은 안정적인 삶을 구성할 거라고 믿었다.

  그런 사람이 100만 원 넘는 비용을 내고 PT를 시작했다. 시작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했던 헬스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수업이 끝나면 막 걷기 시작한 아기 고라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등의 무시무시한 경고를 들었다. 보들보들한 침구에 누워 허리가 배기지 않게 이쪽으로 한 번, 저쪽으로 한 번 고등어 뒤집듯 돌아눕던 일상과는 전혀 다를 것이라는 예상은 했다.

  수업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못하는 분야 자신 없는 분야를 배우는 느낌이 이런 거였구나. 분명 허벅지 운동을 하는데 손에서 땀이 나고 엎드려뻗쳐보다 더 힘든 자세로 1분을 버텼다. 엉덩이에 붙어 있는 근육이 몇 개인지 셀 수 있을 만큼 근력 운동을 시킨 선생님은 첫날이니 가볍게 40분만 트레드밀을 타고 가라고 했다. 40분은 너무 길다고 생각했지만 3으로 맞춰둔 속도를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건 호르몬의 외침일까, 성취감의 효과일까. 걸으면 걸을수록 속도를 올려 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운동이 끝나면 완전히 지칠 게 뻔한데도 신체는 고통을 원했다. 결국 4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오르막 경사를 완주하는 코스를 마치고 땀을 닦으며 트레드밀에서 내려왔다. 일주일 전 등록 설문지의 "좋아하는 운동" 항목에 "운동을 좋아한 적이 없음"이라고 썼던 사람이었는데, 앞 허벅지가 찢어지는 스트레칭으로 시작하는 수업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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