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 E V I E W/글방에서

공유지의 희극

셜리. 2021. 4. 13.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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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지의 희극

2021. 4월 첫번째/나의 불가침 영역

 

 

  수업을 마치고 자취방에 갔더니 머리에 축축한 수건을 두른 친구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나는 좁은 현관의 신발장 위에 무거운 백팩을 내려놓고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습기가 훅 끼치기에 화장실의 작은 창문을 열었다. 언제 왔냐고 물었더니 앞 수업이 끝나자마자 와서는 한숨 자고 일어났다고 한다. 수건을 새로 꺼내 손을 닦고 저녁으로 뭘 먹을지 이야기하는 동안 한 명의 친구가 또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날은 싸구려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내 집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항상 있었다. "너 몸 좀 사려." 작년에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가 친구한테 혼이 났다. 좋아하던 사람한테 마음 반을 내주고 남은 반에 들어오라고 문을 열어두고, 계좌에서 카드로 잔액을 퍼올려 나눠주고 집까지 내줬다고 혼이 났다. 나는 눈물을 많이 흘리면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또 다른 친구의 조언에 따라 비밀번호를 바꾸었는데 지금은 바꾼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이 있다. 올해 초에 이사를 하면서는 아예 침대를 퀸사이즈로 사버렸다. 누가 들어와 누워도 편안하게 자고 갈 수 있다. 친구들의 충고나 꾸중은 별로 효과가 없었고 나는 굉장히 흡족하다.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어보라고 할 수도 있다. 너무 놀라 길바닥에서 무릎을 짚고 주저앉았던 일도 꺼낼 수 있다. 아무리 촌스러움이 유행이라지만 정말 촌스러워서 구닥다리 소리를 들을 플레이 리스트도 보여줄 수 있다. 지금 무슨 생각 해? 나에게 물으면 아무 생각 안 하는데, 했다가 다시 곰곰이 생각해서 그가 무슨 생각을 궁금해 하는지 들려준다. 나는 '불가침'의 '불'위에 엑스자를 그은 팻말을 걸어두고 플리마켓에서 시간과 감정과 공간을 널어둔 사람이나 다름없다. 들어와서 구경하고 가세요, 하면서 적적하고 적이 없는 사람을 맞아 맥주도 마시고 별스러운 이야기도 다 해준다. 아무나 반갑고 빈집이 싫은, 두 마음이 거기에 나가 앉아 있다.

  내 상상의 한 부분에 들어오겠다는 것도 내 집에서 먹태 부스러기를 흘리며 소맥을 말아먹고 나가는 것도 상관이 없는데, 내 마음에 아무나 들어오는 걸 차단하지 못해서 누군가에게 물어보았다. 스스로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든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떤 이는 곁을 내줄 때까지 두 달은 망설이고 육십 번은 고민하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내가 부정하는 법을 몰라서 덜컥 마음으로 들여버린다고 했다. 자책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여전히 바보 같은 사람과 타인을 긍정하는 사람의 차이를 알기 어렵다.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란 건 심장 근처 어디를 좀 단단하게 해주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덜 아플까도 싶다. 나는 물러터진 홍시 같은 근육을 가지고 있을 것만 같다. 순금은 원래 물러, 같은 생각이나 떠오르는 나는 영영 단단해지지 못할 것 같다. 친구들과 갔던 싸구려 삼겹살집도 내가 가면 초코 우유나 귤을 쥐어 주는 사장님이 있던 내 단골 가게였다. 내 불가침 영역을 생각하다 보니 싸구려 삼겹살에 소주를 먹고 싶어, 했더니 내일 당장 가자는 친구가 또 있다. 아무래도 심장 그런 거 안 단단해져도 상관이 없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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