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 E V I E W/글방에서

Be my scent

셜리. 2020. 12. 23. 23:01
반응형

2020년 12월



How did you bloom in my worried heart?

How did you fill up my empty heart?*





그 애는 자신에게 체취가 있다고 하는 게 싫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방에는 항상 체리 향 캔들이 풍성한 빛을 받아 맑게 찰랑였고 선반에는 향기 나는 것들이 가득했다. 프리지아와 멜론, 자두 향이 섞여 새콤달콤한 향수, 코튼 플라워 베이스의 백합 향 바디 미스트가 눈에 띄었다. 블루베리와 크랜베리 냄새가 나는 샴푸와 린스는 바디워시와 로션까지 세트로 갖춰져 줄을 서 있었다. 그 애 옷을 입으면 나는 오렌지 향은 포근했다. 그 애 어깨에 얼굴을 기대면 금방 과일 꿈을 꾸는 기분이 들었다.

출근한 후에 혼자 눈을 뜬 이불에선 그의 냄새가 났다. 자기 냄새라는 게 싫다고 했는데 분명 그 애 냄새가 나. 이건 자두향일까? 베리향일까? 딱 떨어지게 묘사할 수 없는 옅은 향은 이불에 코를 깊게 갖다 댈수록 맡기가 어려웠다. 그럼 난 천장을 보고 숨을 내쉬었다가 그 애가 누웠던 자리 이불을 구겨서 내 얼굴을 다시 묻었다. 한껏 들이쉬면 그 애 냄새가 난다. 향기는 붙잡으려 손을 뻗으면 터져버리는 비눗방울처럼 금방 사라져서 날 슬프게 했다. 이제 거의 코카인 중독자처럼 이불을 들이마셨다고 생각했을 때쯤 빙글 웃으며 얼굴을 뗐다. 코카인을 하면 행복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까 누군가에게 줄지도 모르는 선물을 찾게 된다. 예전에 만났던 사람들에겐 그 사람에게서 났으면 하는 향을 사서 입히곤 했다. 여전히 최고의 냄새는 상의를 들추면 나는 따뜻한 살냄새지만 늘 그런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이에게 선물했던 것은 처음에 자몽, 만다린 냄새가 나다가 나중에 머스크 향이 은은하게 깔리는 향수였다. 그것도 수십 개를 시향 해보고 고른 거였는데, 10년 전 성년의 날을 스스로 축하하겠다고 백화점 명품관에서 큰맘 먹고 샀던 향수도 오렌지가 메인이라니 사람이 아무리 한결같다지만 핀란드 소나무가 따로없다.

그렇게 향기를 따라간 건가 그 애 집엔? 선반을 훑어보다 집어 든 향수는 몇년 전 겨울 8,000킬로미터는 떨어진 곳에서 샀던 내 것과 같았다. "이거 구하기 힘든 건데." "그런가? 난 몇 년 전부터 쭉 쓰던 거야." 그 애가 자고 간 우리 집 내 이불에도 같은 향기가 났다. 그러나 수년 간 같은 향을 뿌리고 살아왔다 한들 그것만으로 빈 심장을 채워주긴 어렵다는 것을. 빗장 친 마음은 크리스마스 음악과 선물로도 두드려보기가 어렵다는 것을. 프리지아를 손에 들고 주변을 맴돌아 볼까. 내 심지를 깎아서 침대를 만들어 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견고해지길 바란다는 말은 서로 욕심이란 걸 알잖아.





*Chamsom-Rosen(Eng Ver.)의 가사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