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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가지고 싶으세요?

셜리. 2020. 12. 9.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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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가지고 싶으세요?

10월 둘째주

 

   서울 출장을 마치고 대전으로 돌아오는 밤기차에 동료와 나란히 앉았다. 열 시가 되기 직전이었다. 큰 건 하나 끝낸 다음이라 후련한 마음에, 연말이 다가온다는 초조한 기분에 한산하고 안락한 평일 열차에서 동갑내기 동기 둘만 진지한 상태였다.

"나는 말이지, 예전에는 아파트나 자가용 같은 게 성공을 결정짓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이제는 아니야, 정말로. 평수나 브랜드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내가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집, 마음 편하게 탈 수 있는 차면 돼.“

  나는 일정부분 공감하면서도 여전히 외제차는 갖고 싶다고 답했다. 텔레비전은 연예인들의 일상을 비추며 햇빛이 쏟아지는 널찍한 통유리창 아파트야말로 성공의 척도라는 것을 매일같이 전시했다. 자본주의의 귀족이 기지개를 쭉 펴며 바라보는 창문 밖으로는 그 집 한참 아래에 흘러가는 널따란 한강이 보였다. 끝없는 바다처럼 헛헛하지도 않고 비좁은 연못처럼 질척대지 않는 강 곁에 산다는 건 부러운 일이다. 강물은 누구나 바라봐도 된다고 반짝반짝 눈이 부시지만 밤낮으로 감상할 수 있는 권한은 사실 모두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한여름 뚝섬 유원지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며 왁자지껄한 사람들 틈에서 주변을 돌아본 적이 있다. 누구나 한 번씩 멀리 시선을 두는 곳은 초록색 노란색 불빛의 청담대교를 따라가면 나오는 건너편의 환한 아파트였다. 강물은 평평하게 흘러가지만 평당 9,000만원짜리 집은 삐죽 솟아 선망의 눈길을 받았다. 1,800원을 주고 산 캔맥주는 한 시간 정도 강구경을 시켜주고, 18억을 주면 평생을 볼 수 있게 해준다. 더 높은 층에서 더 나은 시야를 갖고 싶다면 돈을 더 내기만 하면 된다. 물질주의의 공평함은 그런 식이다.

  한강은 내가 본 파리의 세느 강보다 넓고 런던의 템즈 강보다 물이 많았다. 유유히 흐르지만 수심이 깊어 그 속을 알 수 없다. 화려한 유람선 아래로 무엇이 굴러가는 중일지 어떤 게 쌓여있을지 모른다. 마포대교를 건널 때 묘해지는 기분은 그 다리에 걸린 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느껴보았을 것이다. 한강변을 못 가져 한강으로 간 사람들도 있으니, 아름다움에 이끌려 생을 마감하게 하는 이 강은 호사스러움과 동시에 탐욕과 가난, 비참함을 모두 품은 셈이다.

  지하철이라더니 1호선이나 2호선을 타면 물 위로 올라가 달리면서 국회의사당이나 잠실타워를 보여줄 때가 있다. 가장 자주 타는 3호선 동호대교 위 철교를 지날 때는 꼭 카메라를 켠다. 내 식대로 한강을 소유하는 방법이다. 친해지기 어려운 강이지만 분홍빛 석양과 함께 화면에 담긴 걸 보면 흐뭇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적절한 거리를 두고 가장 예쁠 때 바라보며 모두 소유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상기하면 그처럼 만족할 수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 볼보는 갖고 싶은데. 볼보는 무엇보다 안전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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