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두 번째_확장성
우주는 한순간 뻥 하고 터지며 만들어졌다는데 나도 언젠가 터지게 될까? 요즘 터질 것 같다고 느낄 때는 너와의 문자가 끊겼다가 다시 "이거 보고 언니 생각이 났어요."라는 문장이 도착했을 때. 엎드려 뻗친 자세로 지구를 반대편으로 밀며 팔 근육을 키워 보려 애쓸 때. 심장도 섬유조직도 터지지가 않지만 어쩐지 터질 것 같잖아. 폐부 가득 벌써 초여름인 척 불어오는 미지근한 바람을 채워 넣을 때. 머리엔 산소가 들어차고 봄 대신 몸이 더워진다.
어제는 집에서 작업을 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헬스장에 가버렸다. 안 되긴 뭐가 안돼? 러닝 머신 위에 올라가서 평소보다 더 경사진 코스를 더 빠르게 뛰었다. 그 모습을 봤다는 트레이너 선생님은 "혹시 일에서 스트레스 받은 게 있으세요?" 물었다. 안 좋은 일이 있는 사람들이 갑자기 헬스장에 나타나 러닝 머신을 열심히 뛰고 간다고 한다. 나는 웃고 고개를 저으면서 새로운 방법을 터득한 나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한쪽으로 기울어 있는 내가 느껴진다. 생각할 때마다 고쳐보는데 근본이 바뀌진 않는다. 나는 기울어진 몸으로 이 우물 저 우물 열심히 판다. "여러 우물 파다 보면 호수가 되지 않겠어요?"라는 말을 최근에 들었다.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많이 하시네요."라는 말도 들었는데 요즘 애들이 다 그렇죠, 하고 시니컬하게 대답한 걸 후회한다. 우주가 갑자기 뻥하고 터지면서 부스러기로 별과 달과 행성과 그 모든 것을 만들었다면 나는 글 쓰러 다니고 말하러 다니고 만나러 다니면서 나를 만들고 있다. 우주의 끝은 미스테리. 명확한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나도 역시 미스테리다.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수식어가 어울리냐 물었더니 여러 답변이 나왔는데 그 중 '강단'을 말한 사람이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강단 있어 보인다'라고 말했고 한 명은 '강단에서 말하는 모습이 떠오른다'라고 썼다. 이만큼 일치하진 않아도 비슷한 단어들이 나열되었다. 나는 나에게만 미스테리인 건가? 숙제 같은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미뤄봤더니 이구동성이면 그게 정말 나일까 싶고.
'올해의 다짐'이라는 거창한 명목을 가지고 시작한 개인 운동 때문에 글감이 생각나지가 않아. 아메바가 된 것 같아. 하지만 이전까지 몸 쓰는 일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나는 삽으로 물 나올 만한 곳을 잘 골라 또 다른 곳을 파고 있나 보다. 이 모든 걸 빨아들이면 어떤 사람이 될까? 열 살 때 할 법한 질문은 50살에도 하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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