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 E V I E W/글방에서

나는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셜리. 2019. 5. 3.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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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방글방 첫번째 모임(4/9)

 

싱싱한 원근감을 주는 글

  어떤 글을 쓰고 싶다, 하고 떠올리면 무수히 많은 작가들 이름 사이에서 떠오르는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이다. 그의 진면모를 알기 위해 원문을 읽어보려는 시도를 했다거나 원문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여러 번역가가 옮겨 놓은 책들이 동일한 향기를 풍기는 것은 원작자의 색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좋아하는 글을 꼽자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여행 에세이집의 '푸른 이끼와 온천이 있는 곳'이라는 꼭지이다. 작가는 2008년 9월에 열린 세계 작가 회의를 위해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를 방문했다. 하지만 세계 작가 회의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고, 아이슬란드 곳곳을 돌아보며 자신이 관찰한 것을 40페이지 분량으로 묘사한다.

 

from unsplash.com ⓒadamjang

 

  이 글이 좋은 첫 번째 이유는 아이슬란드를 잘 그려낸 글이기 때문이다. 묘사란 객관적인 표현방법일 것 같지만 상당히 주관적이어서 누가 보고 쓰느냐에 따라 대상의 형체가 전혀 달라진다. 나는 2017년의 뜨거운 7월 말, 거제도 시골집의 마루에 누워 이 글을 읽었다. 여름휴가를 스마트폰 없이 보내겠다며 전원을 끄고 가방 한 구석에 재워 둔 채 온전히 텍스트에만 집중했다.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 바람과 아이슬란드에 휘몰아치는 거센 바람은 전혀 다르겠지만, 하루키의 담담하고 정직한 서술은 내 곁에 냉기를 감돌게 했다. 나는 초록색의 대우 자동차를 타고 거친 길을 달리며 광활하게 이끼 낀 대지와 '영원에 가 닿을 듯한 정적, 깊은 바다 내음'을 엿보았다. 생생하면서도 과하지 않기에 질리지 않고 오래도록 간직하게 된다. 마음이 어수선했던 어느 밤 필사를 해보자고 펼쳐 든 글이 이 장이었음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from unsplash.com ⓒv2osk

 

  하루키는 관찰한 것과 겪은 것, 알고 있는 것을 잘 어우르고 분배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레이캬비크에서 며칠 머무르며 체험한 아이슬란드의 일상은 아이슬란드 문화의 일부일 것이다. 그러나 하루키의 풍부한 경험과 독서량, 다방면으로 가진 관심사가 녹아들어 글은 더욱 다채로운 빛을 띤다. 독자는 온천의 아름다움을 느끼다가 1973년의 화산 폭발을 알게 되고, 다시 그것으로 형성된 하이킹 코스를 본다. 화산 분화 사건에 대한 일본인의 공감을 접할 수도 있다. 이야기의 조합이 자연스러워 작가가 만들어낸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여행을 함께한 아내와의 대화, 독백, 설명을 오가 잔잔한 문체임에도 리듬이 생긴다. 기술적인 부분도 하루키의 매력임에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풋'하는 웃음을 일으키는 글이라서 좋다. 일본인 특유의 자책, 자기 반성적 재담 때문에 웃게 될 때가 종종 있다. 아이슬란드를 렌트카로 여행하려는 사람이라면 셀프 주유 방법을 익혀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구가 적고 지나가는 차도 없는 경우가 태반이라, 주유 방법을 모르면 텅 빈 차 탱크를 두고 처량히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처럼. 나는 한국인이니 꼭 자책할 필요는 없겠지만 하루키처럼 읽는 사람에게 웃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글쓴이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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