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 북두칠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건 작품을 실제로 본 후 6년이나 지나서다. 북두칠성은 누구나 알고 있고 흔히 예술작품의 대상이 되는 별자리지만, 이 그림에서 국자 모양으로 이어지는 일곱 개의 별을 찾고 나서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 나에게 와닿은 이유가 더욱 또렷해졌다.
6년전 여름 프랑스 파리를 여행하면서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인 오르세 미술관을 들렀다. 그림에 대해 아는 거라곤 중학교 미술 시간에 훑은 몇몇 유명 작품들의 제목뿐이었지만, 그 몇몇 작품을 포함한 세계적 작가의 그림이 가득한 오르세는 다섯 시간을 둘러보고도 끊임없이 눈이 휘둥그레지는 별세계였다. 폐장이 30분 남았다는 안내 방송을 듣고 마지막으로 달려간 전시실은 빈센트 반 고흐 관이었다. ‘자화상’이나 ‘예술가의 방’처럼 잘 알려진 작품이 즐비했지만, 내 마음을 가장 잡아 끌었던 그림은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단독으로 걸린 이 작품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숨을 헉하고 들이마셨다. 꽃잎모양으로 펼쳐진 별들과 강물 위의 섬세한 붓터치가 깊은 어둠에 대비되어 춤추면서도 차분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닫기 5분 전이니 제발 나가 달라는 멘트가 나올 때까지 캔버스 구석구석을 눈깜빡임으로 찍고 또 멀리서 위아래로 스캔하며 감상하다 뛰쳐나왔다.
사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고 하면 이 그림보다는 뉴욕 현대미술관에 전시된 ‘별이 빛나는 밤’이 대표적이다. 나 또한 오르세를 방문하고 1년 반이 지난겨울 뉴욕에서 ‘별이 빛나는 밤’을 인상 깊게 관람했다. 하지만 어쩐지 더 오래된 기억 속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 더 크게 반짝인다. 스케일의 차이 때문일까? 폐장 직전의 절박함과 함께했기 때문일까?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새벽까지 밤낚시를 했던 적이 있다. 여름 밤바다는 호수처럼 고요했고 만을 둘러싼 산에서 숲 바람이 불어내려와 어깨를 시원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미동도 없는 낚싯대를 붙잡고 하릴없이 바다 표면을 바라보던 내 등을 툭 하고 친 사람은 똑같이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을 아빠였다. “저기 올려다봐.” 500미터쯤 되는 산등성이 위로 11년 인생 본 가장 큰 국자가 떠있었다. 여름에는 별들이 땅 가까이 내려오기라도 하는 걸까. 바닷가를 따라 줄지은 주황색의 가로등 불빛은 바다를 물들이는데 그쳤지만 북두칠성은 하늘을 압도하고 있었다. 곧 쏟아져 내려 가슴을 눌러버릴 것처럼 숨이 막혔다. 별이 이동하는 시간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였다. 느리지만 깊게 들이쉬고 내쉬며 다시 보기 힘들 광경을 담았다. 그 날 몇 마리의 바다장어를 양동이에 잡아왔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7월 말의 청명함과 일곱 개의 별이 떠있던 우주의 일부만을 퍼담아 온 것 같다.
열한 살의 나와 아를에 머물렀던 고흐는 같은 하늘을 본 것이다. 론 강을 둘러싼 불빛이 물에 비치고 두 사람이 다정스레 풍경 속에 자리한다. 그림 하단에 위치한 두 대의 조각배가 강 위에서 흔들릴 때, 내가 바닷가에서 들었던 달가닥 달가닥 낚싯배 부딪히는 소리가 났을 것만 같다. 불안정한 수면은 화가의 붉은 수염을 간지럽히는 얕은 바람 때문은 아니었을지. 인정받지 못하던 예술가가 정신적 고통과 결함에도 불구하고 붓을 쥘 수 있었던 것은, 어른이 되어가는 나에게 별들이 주었던 꿈과 동경의 힘 덕분이 아니었을지. 영원처럼 존재하면서 백 년을 넘어 고흐와 나를 이어준 그 힘이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빛내고 나의 까마득한 밤하늘도 선명하게 만든다.
6월 규방글방, 그림을 보고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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