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버티는 일이 있지 않은가. 낡은 잠옷은 이제 그만 보내줘. 그 녀석은 널 만날 자격이 없으니 제발 헤어져. 마무리 짓는 것이 서로에게, 특히 나에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놓지 못하는 관계가 있다. 오래된 잠옷을 버리면 잠옷 입장에서는 더 해어지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고, 나는 빳빳한 새 파자마를 마련해서 기분이 좋을 텐데. 그 사람을 보내주면 그는 자유의 몸이 되니 신나고, 나는 나를 아껴 줄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가 생길 텐데. 나는 어이없게 애착 잠옷도 바람 같은 사랑도 아닌 사랑니를 버리지 못했다. 애초에 삐죽이 모서리를 천장으로 쳐들고 솟아오를 때부터 삐뚤어져 있다는 걸 알아봤다. 야, 사랑니 날 때 원래 이렇게 아프냐? 당연한 질문을 하고 당장 빼러 가야 한다는 대답을 들었지만 실없이 웃으며 아픔을 참았다. 무섭게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하루 몇 시간 견디고 며칠 지나면 또 없는 듯이 잠잠했다. 막연히 더 자라지 않을 거라고, 나를 아프게 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오늘 너의 집에 가지 못한다는 문자를 받고도 2인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런데 이 날만큼은 사랑니가 너무 아파서 견딜 수 없었다. 플래시를 켜서 입 안을 들여다보니 잇몸이 하얗게 부었다. 밤에는 끙끙대다가 새우처럼 등을 굽어도 통증이 가시질 않아 아스피린 한 알을 먹고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평소처럼 출근을 했다. 잇몸은 평상시 같지 않게 부어서 위아래 어금니 사이로 씹힐 지경이었다. 목 안쪽이 부풀어 올라 말소리를 웅얼거리자 주변인들이 조퇴를 하라고 부추긴다. 다음 주까지만 참으려고요,라고 말했는데 잇몸에서 맥박이 날뛰는 듯 욱신거린다. 주말까지 버티면 터져버리겠다고 경고하는 것 같다. 결국 나는 팀장님 사랑니가 너무 아파 4시에 퇴근해보겠습니다. 묻지도 않은 이유를 꼭 말하고 회사를 일찍 떠났다.
비가 무척 많이 와서 이어폰을 꽂고 우산을 썼는데 그 감상에 젖어 이에 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회사를 나오니 덜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엊그제 다녀온 콘서트 생각을 하며 오랫동안 좋아한 팝송을 허밍 하기까지 한다. 무의식적으로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치과로 향하고 있었다. 막상 치과에 도착해서 소독약 냄새가 확 끼치자 조금 정신이 든다. 이어폰을 한쪽씩 차례로 뽑아 가방 안쪽 주머니에 집어넣고 리셉션 데스크에서 처음 왔다고 말을 했다. 사랑니가 너무 아파서 빼러 왔어요. 앉아서 대기하라더니 잠깐 생각할 틈도 없이 엑스레이 촬영을 하러 들어오라는 소리에 허둥지둥 짐과 우산을 챙겨 움직였다. 눈 감고 표시된 곳 앞니로 물어주세요.라는 간호사의 안내에 손잡이를 잡고 위아래 앞니로 물어야 하는 곳에 이 사이를 걸쳤다. 그리고 촬영이 끝날 때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몰라서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간호사가 들어오면서 이제 눈 뜨셔도 돼요, 라며 푸흡 하고 웃는다. 남을 웃기는 건 좋은 일이지. 다시 허둥대며 가방과 핸드폰을 챙겨서 진료실로 따라 들어갔다.
안경을 낀 의사가 간단하게 사진을 보더니 지금 왼쪽 위아래로 난 사랑니는 두 개 다 빼셔야 하는 게 맞아요. 둘 다 빼시겠어요?라고 물었다. 그렇게 되면 그렇게 해 주세요.라고 했더니 거절 의사가 없었다. 바로 의자가 젖혀지고 수술 조명 같은 게 입을 비추고 눈이 부셨다. 미리 준비를 해둔 건지 '따꼼합니다' 하는 친절한 설명이 있자마자 마취 주사가 잇몸 아래쪽에 깊게 침투했다. 의사는 여섯 번이나 바늘을 찔렀는데 염증이 심한 부위에 주사를 놓을 때는 왼쪽 눈만 눈물이 가득 고일 정도로 따꼼했다. 의사는 완벽하게 마취가 될 때까지 텀을 두기 위해 의자를 세워주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나는 왼손으로 몰래 눈물을 닦아냈다. 마취제는 빠르게 퍼지며 잇몸과 혀, 입술을 마비시켰다. 멍청하게 왼쪽 혀가 어디 있는지 손가락을 넣어 확인해 보다가 더 이상 안쪽 잇몸이 아프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흠. 감각이 없는 혀를 깨물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입안 오른쪽으로 옮기다가 문득 이를 두 개나 빼러 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마취는 이렇게 빠르게 되어버렸고, 나는 이 약효가 끝나고 나서 다시 사랑니가 아픈 것이 싫으니까 오늘 이를 빼버려야 한다. 의사와 간호사가 보는 앞에서 단호한 척 그렇게 선언을 했고.
마지막으로 이를 뺀 것이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답은 15년 전이다. 교정치료를 하면서 어금니 앞쪽의 작은 어금니를 왼쪽 오른쪽 상하악 모두 빼면서 4개의 영구치를 발치했다. 열세 살짜리의 작은 어금니는 생각보다 뿌리가 길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있던 곳의 깊이를 실감하게 했다. 그때는 아빠가 옆에 있었다. 예술관 건너편에 있는 치과에서 교정치료를 하고 나면 아빠랑 해물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만두를 포장해서 집에 가져가면 엄마랑 동생이 맛있게 먹었다. 그 해물칼국수 집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지금은 내 옆에 가족 중 누구도 없다. 손이 떨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만! 속으로 외치며 오른손으로 왼손을 잡았는데 양손이 동시에 떨렸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급진적인 결정을 한 거지? 어깨가 바짝 수축되며 달달거리고 있는데 의사와 간호사가 돌아왔다. 간호사는 흰 옷이라 담요를 덮어드릴게요. 라며 널따란 회색의 샤워타월 같은걸 반으로 접어 몸통 위에 얹어 주었는데 상당히 안정이 되었다. 승모근을 이완시키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에어컨 바람이 닿던 곳에 푹신한 수건을 덮으면 얼마나 평화로운 기분이 드는지는 누구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니는 이 모든 과정이 무색하게도 순식간에 내 몸에서 뽑아져 나갔다. 기술이 좋은 의사였다. 조금의 찌걱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 말고는 어떤 공포감도 들지 않았다.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빈 공간에 채워준 거즈를 꼭 물고 한 손에 든 얼음팩으로 볼찜질을 하며 집으로 걸어가는데 아직도 비가 그치지 않았다. 차가운 팩 때문인지 사랑니를 두 개 한꺼번에 뺐다는 극단적 결정 때문인지 우산이 무거워서인지 떨리는 몸이 멈추지 않았다. 집이 가까워 망정이지 계속 그렇게 흔들리며 걸어 다녔다가는 사시나무로 오해받았을지도 모른다. 젖은 우산을 현관문 손잡이에 걸었더니 물이 뚝뚝 떨어진다. 어깨에 걸었던 가방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셔츠를 벗어 대충 의자에 걸친 후 침대로 풀썩 쓰러졌다. 내 체취가 나는 이불속에 몸을 구기고 들어가니 그제사 마음이 놓인다. 나는 벌어진 입에서 피가 새는 줄도 모르고 두 시간을 내리 잤다.
자기 전에 처방해준 진통제를 미리 먹은 덕에 저녁에도 통증이 없었고 좋아하는 인스턴트 소고기죽과 망고맛 빙수를 사 먹었더니 오히려 즐거운 금요일 밤으로 여겨졌다. 제출해야 하는 인터뷰 지를 작성하고 최근 즐겨 보던 미국 드라마 세 편을 연달아보니 평상시와 다를 바 없었다. 치과에서는 발치한 부위를 혀나 손가락으로 건드리지 말라고 했지만 낮까지 딱딱한 바위 같은 게 들어차 있다가 물렁하게 꿰맨 부위만 남으니 궁금해서 가끔 혀를 갖다 댔다. 다 아물지도 않은 상처였지만 가득한 느낌을 주었다. 손을 잡아줄 연인도, 칼국수를 퍼다 주는 아빠도 없었지만 괜찮았다. 사랑니는 내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회복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줬을지도 모른다. 타인이 재촉했던 시간과 다르게 온전히 혼자여도 괜찮은 시기가 될 때까지 미루다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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