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력에 의해 변형되었던 형태가 원모습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힘을 탄성력이라고 한다. 힘껏 눌렀던 고무풍선도 너무 세게 누르면 오히려 손아귀를 빠져나가 제모습으로 돌아가고, 멀리 보내려 잡아당겼던 고무줄을 잘못 다루면 원래 길이로 줄어들며 내 손을 치기도 하기도 한다. 현재 한국에서는 일그러졌던 여성들의 인권이 탈코르셋 운동을 통해 '디폴트'로 돌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이 움직임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지에 실린 탈코르셋 운동
http://bitly.kr/8CJil
뉴욕타임즈에 실린 탈코르셋 운동
http://bitly.kr/DSFu2
어떤 사람들은 허위라고 주장하는 각종 OECD 지표와 UN의 권고가 보여주듯이, 한국은 여성 인권 후진국이다. 정치적, 경제적 영역에서 후진적 면모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다. 탈코르셋 운동은 그중에서도 여성의 외모에 씌워진 여성혐오적 족쇄에 주목한다. 여성들은 매일 아침 5분이라도 더 자고 싶은 전인류적 욕구를 뒤로하고 남성들보다 최소 20분에서 최대 2시간까지 먼저 일어난다. 다 뜨지 못한 눈을 미온수로 닦아내고 아침 세안에 좋다는 폼클렌저를 거품 내는 볼에 잔뜩 짠다. 샴푸, 린스, 긴 영어 이름의 트리트먼트까지 마치고 나서야 본게임 시작이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말리는 데만 꼬박 15분. 고데기와 드라이를 마치고 나면 설명할 필요 없이 복잡한 메이크업을 얼굴에 얹는다. 화장을 마치고 나면 소화가 좀 안 되어도 다리가 가늘어 보인다는 압박스타킹을 신고 허리가 잘록해 보이는 치마를 입는다. 여기에 러닝화를 신을 수 없으니 전공책을 가득 품에 안고도 6cm(정도면 다행인) 힐을 신고 집을 나선다.
이 과정이 아주 고통스럽다고만 할 수는 없다. 남들이, 사회가 칭찬하는 방향으로 나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찰랑거리는 머리카락과 날씬한 다리를 보면 어쩐지 뿌듯하고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이 된 느낌도 든다. 자기 관리와 박수갈채의 기준은 누가 세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영국의 '더 가디언'은 '탈코르셋:한국의 여성들이 엄격한 미의 기준에 반기를 들었다'('Escape the corset': South Korean women rebel against strict beauty standards, 2018.11.26)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탈코르셋 운동에 대한 기사를 냈다. 가디언지는 이 운동이 한국의 가부장적인 사회에 대항해 불법 촬영이나 성폭력 이슈에 반대하는 수많은 여성을 길거리로 나오게 했던 더 큰 분투의 일부라고 전했다. 또한 지금까지는 한국의 수많은 순응주의자가 대세에 맞춰 서로 비슷한 모습으로 가꾸어 왔으나, 최근 몇 달간 온라인 운동을 통해 화장품을 부수고 사회적 기준에서 벗어난 모습을 게시하는 등 꾸밈 노동에 대항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들이 한국의 급진적 탈코르셋 운동에 놀라는 이유는 한국이 명실상부한 성형공화국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뉴욕타임스는 '한국은 성형수술과 화장을 사랑한다. 일부 여성이 그것을 바꾸고 싶어 한다.'(South Korea Loves Plastic Surgery and Makeup. Some Women Want to Change That, 2018. 11. 23)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행했다. 밉지만 부정할 수 없는 타이틀이다. '더 가디언'이 제시하듯이 우리나라는 밝은 피부, 큰 눈, 높은 콧대, 붉은 입술, 마른 9등신 몸매, 작은 얼굴 등 수 많은 미적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그 기준에 부합하는지 아닌지를 평가당한다. 그러한 압박에 못이겨 성형을 하고, '성형화장'을 하고, 시술을 받기도 한다.
일부는 이러한 미적 기준이 여성 스스로 경쟁하여 만들어낸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있다. 유교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을 '초이스'할 수 있는 것은 누구일까? 가정에서 가장 큰 발언권을 가진 사람은 보통 남성인 아버지, 그리고 장남이다. 이들은 면접장에서 면접관이 되고 결혼시장에서 예비 가장이 되어 누군가를 선택할 권력을 가진다. 이 단순한 구조는 여러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위 공무원의 6.5퍼센트, 국회의원의 17퍼센트만이 여성인 나라에서 여성에 대한 기준을 그들 스스로 세울 수 있다는 믿음은 순응주의자들의 자기 위안으로 여겨질 따름이다.
당장 집안의 모든 화장품을 꺼내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하는 행동의 주체가 정말 우리 자신인지 고민해봐야한다는 것이다. 세계가 우리 안의 변화에 주목할 때에 진정 나의 의지에 의해 아침마다 수 십분을 투자하는 것인지 숙고해볼만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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