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영웅인가
1997년 말 IMF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90년대는 '호시절' 이었다. 고금리, 고성장, 일자리도 많고 출생률도 높으니 국가와 국민 모두 걱정이 없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를 떠돌아다니는 글에는 90년대에 대한 향수가 짙다. 당시 초등학생들의 작은 손에 들려있던 아이스크림 종류부터 압구정 길거리 패션, 힙합 바지에 알 작은 선글라스를 끼고 무대를 누비던 가수들의 세기말 음악까지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80년대의 이념 싸움에서 승리한 민중이 자유 민주주의를 만끽하는 동안 경제와 문화는 호황을 누렸지만, 인권 사상은 아직 불황이었다.
1992년에 태어나 이 시절을 겪은 나는 아파트 앞마당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내 모습을 그릴 수 있다. 새로운 세기가 오기 전까지 초등학교 입학 전의 삶이 대부분이었던 내게 90년대의 사회 문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호주제에 대한 의식 없는 아저씨들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든, 직장과 대학 강의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자들이 있든, 90년생 백말띠 언니들이 태아 성감별을 통해 낙태를 당했든, 피아노 학원 가는 길에 포장마차에서 천 원어치 떡볶이와 250원짜리 염통 꼬치를 먹을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1993년에는 서울대학교 화학과 남교수 신정휴가 조교를 성희롱하여 경찰에 고발당하는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제기된 최초의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소송으로 법정 투쟁에만 6년이 걸렸다. 1999년 6월, 최종적으로 신정휴 교수가 피해자에게 5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고 이를 계기로 성희롱이 불법행위라는 사회적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이 판결 전에는 성희롱은 존재했으나 이에 대한 시민의식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 결정적 사건에서 원고가 승소할 수 있도록 도왔던 변호인 중에는 지난 9일 사망한 서울시장 박원순이 있었다.
2020년 7월 8일 성추행 가해자로 고발당한 후 자살로 생을 마감한 박원순은 일부 인사에게서 한국 여성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박원순은 이미 화장되었으니 실제로 듣지 못하겠지만, 살아있기에 평을 전해 들은 나는 저 문장에서 '한 획'이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그 획이란 최초의 성희롱 승소 변호사에서 성추행 가해자로의 고발로 낙하하는 역설적 하향선으로 추론된다. 남성은 여성사에 온전한 도우미로 남을 수 없음을 입증하는 획인 셈이다.
1900년대의 마지막 10년 동안 터트렸던 폭죽을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보는 것을 만류할 수는 없겠지만 그 시절에도 고통받는 약자들이 있었다는 것은 기억해야 할 사실이다. 약자를 도울 이들은 적었고 제도와 인식이 현저히 낮은 수준이어서 하소연할 수 없이 삼켜내야 했던 사건이 무수했을 것이다. 지나간 세월은 쉽게 미화되고, 죽은 남자는 더 쉽게 영웅화된다는 점에서 냉정하게 평가해 보자. 되돌아봐야 할 것은 박원순이 아니라 열악한 환경에서 6년간 포기하지 않은 피해자이며 승소한 것은 변호사가 아닌 원고였다. 사법계 여성사에서 큰 획을 그은 이들은 고통을 감내하고 끝까지 싸운 여성들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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