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서커스를 향해 가는 길에
"다음번에 또 뵙겠습니다."
가능하다면 말이죠. 셜리는 뒷말을 숨기고 달러화 몇 장이 든 봉투를 공연자에게 건넸다. 입장료와 스낵 판매로 번 120달러에서 40달러를 뺀 금액이었다. 남은 금액을 점퍼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천막을 해체하며 주차장을 바라봤더니 오늘 관중의 전부였던 네 명이 무어라 이야기를 하며 한꺼번에 캐딜락에 올라타는 게 보였다. 셜리만큼 젊은 여성들이었다.
천막을 모두 걷어 트럭의 짐칸에 실었다. 운전석에 올라탄 셜리는 테이프를 넣어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다. 아무리 사양산업이라지만 너무한 거 아닌가. 샌프란시스코 지역 축제 부스 전체를 통틀어 가장 적은 관객이 왔던 게 틀림없다. 눈물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지만 괜히 하-이 웨이 투 헬! 하고 트럭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로큰롤을 따라 불렀다.
산타마리아 축제가 열리는 곳까지는 차로 4시간 반을 달려야 한다. 262 마일 (약 420km)를 직진해야 하는 이 경로에 즐거움이 있을 리 없다. 신명 나게 두드려대는 드럼 소리나 찢어지는 기타 소리도 무표정한 셜리의 심장을 펼 수 없었다. 도로 양쪽으로 늘어선 집들이 미웠다. 밀대로 쭉 눌러 펴놓은 듯 위로 옆으로 튀어나온 집도 없이 짜여진 거리에 줄 맞춰 지어진 이층집 더미. 저 집안에 사는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분명 서커스가 얼마나 흥미로운 볼거리인지 모르는 고루한 인간들일 것이다.
도로는 이제 도시를 벗어나 양옆으로 누런 풀밭이 누운 곳을 반으로 가르고 있다. 트럭은 여전히 직진 중이다. 밀밭이나 오렌지밭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아무런 농작물도 기르지 않는 텅 빈 황무지는 셜리를 더욱 외롭게 했다. 주머니에 40달러가 아닌 400달러가 있었다면 덜 쓸쓸했을까. 미간은 구겨진 지폐처럼 쭈그러들었다. '딩딩'하고 기름이 없다는 표시가 뜨지 않았다면 쉬지 않고 악셀을 밟듯 이 기분에 빠져들었을 것 같다. 물론 기름값이 기분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트럭에 기름을 채우고 잠깐 허리를 펼 겸 편의점에 들어갔다. '딸랑'하고 문에 달린 방울 소리가 나자마자 누군가 히익 하고 큰 숨 들이마시는 소리로 셜리를 놀래켰다. "저기요!" 안경을 쓴 땅딸막한 사람이 달려 나와 셜리에게 부딪히듯 다가섰다.
"어디를 가는 길이요? LA 방면이요, 샌프란시스코 방면이요?“
자신이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은 이 땅딸보가 무척 무례하다고 생각했지만, 도저히 닿지 않을 셜리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붙이겠다는 듯 고개를 들이미는 이 사람이 사뭇 진지해 보여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나오는 중입니다. 산타마리아로 가고 있고요.“
"산타마리아!“
안경쟁이는 이마를 탁 치며 앉아있던 테이블로 돌아가 종이 뭉치를 서류 가방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얼마나....... 지루한 시간을....... 보냈는지....... 당신은 상상도 못 할 거요. 산타마리아. 산타마리아면 충분합니다!" 그는 허겁지겁 자신이 먹고 마신 듯한 과자 봉지와 커피잔을 커다란 쓰레기통에 던져 넣더니 셜리에게 달러 뭉치를 건넸다.
"산타마리아까지 날 태워주시오!“
시외버스를 타고 가던 중 정유소 화장실에 들렀다가 자신의 버스를 보내버렸다는 이야기, 휴게소에서 무엇을 읽었는지,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샌안드레아스 단층, 산타마리아에서 버스를 타면 절대 휴게소에 내리지 않게 물을 마시지 않겠다는 것까지 키 작은 과학자의 높은 목소리는 끝이 없었다. 그러나 주머니 속 400달러 덕분에 셜리는 락 음악을 듣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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