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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E V I E W/글방에서 31

나에 대해 예상하셨다면서요

내가 그런 말을 전할 때부터 예상하셨다면서요뭘 예상하셨어요.1. 그 사람한테 너무 많이 정을 줄까봐2. 니가 새롭게 관계를 맺게 됐을 때 앞뒤 따지지 않고 정을 줄 것 같아3. 다 그 얘긴데 그냥 니가 뭐야 녹취록이야?4. 나 이런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말 못해5. 하하하하하6. 취재를 당해본 적이 없어7. 좆까 시발8. 아니..니가 너무 정이 많은 사람이라 그 사람한테 정을 원할 사람이야. 그 사람은 답을 줄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니가 그걸 갈구할까봐 걱정이야.

한강을 가지고 싶으세요?

한강을 가지고 싶으세요? 10월 둘째주 서울 출장을 마치고 대전으로 돌아오는 밤기차에 동료와 나란히 앉았다. 열 시가 되기 직전이었다. 큰 건 하나 끝낸 다음이라 후련한 마음에, 연말이 다가온다는 초조한 기분에 한산하고 안락한 평일 열차에서 동갑내기 동기 둘만 진지한 상태였다. "나는 말이지, 예전에는 아파트나 자가용 같은 게 성공을 결정짓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이제는 아니야, 정말로. 평수나 브랜드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내가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집, 마음 편하게 탈 수 있는 차면 돼.“ 나는 일정부분 공감하면서도 여전히 외제차는 갖고 싶다고 답했다. 텔레비전은 연예인들의 일상을 비추며 햇빛이 쏟아지는 널찍한 통유리창 아파트야말로 성공의 척도라는 것을 매일같이 전시했다. 자본주의의 귀족이..

비오는 날 깜깜한 꿈

환절기 감기몸살에 걸려서 하루종일 잠만 잤더니 꿈을 여러가지 꿔서 혼란스럽다. 몸은 여전히 으슬으슬하다. 정신나간 판타지와 총기 액션이 가미된 가족물 등 기억나는 서너가지 꿈 중에 하나는 안지 얼마 되지 않은 지인이 나오는 꿈이었다. 앞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내게 찜찜한 기분을 남긴 사람이어서 그런지 꿈에서도 그랬다. 그 사람은 나에게 뭔가를 빚져서 과자를 한 봉지 사주고 돌아가려는데 비가 쏟아졌다. 킥보드를 타고 왔길래 비 맞고 갈거냐고 했더니 괜찮다고 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우산을 손에 들려 줬다니 고맙다며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집을 가더라. (그게 가능한가? 킥보드를 안타봐서 모르겠다.) 며칠 후 우산과 나에게 빌린 책을 돌려주러 왔는데 그 책이 생각보다 별로였다고 한다. 자기가 읽기엔 ..

왜 머리 잘랐어?

여름이 끝나가며 업무상 나와 만날 일이 잦아진 A는 가슴까지 오던 머리를 단발로 잘랐다. 7월 중순까지 파운데이션으로 덮였던 얼굴과 끈적거리던 립글로즈를 빛내던 입술은 담백해졌다. 주야장천 대중을 대상으로 탈코르셋 해야 한다고 말해왔으면서 A에게 슬쩍 질문해보았다. "A, 왜 머리 잘랐어?" "어, 그냥 너무 무거워서." A는 쑥스러움 반 멋쩍음 반인 웃음으로 알아들으라는 듯 대답했다. 이 대화는 처음이 아니다. 여섯 달 전에는 친구 세 명과 봄맞이 소풍을 갔다. 커다란 분수가 있는 호수 근처 공원이었다. 나 포함 두 명은 얼굴 편안한 상태, 나머지 두 명은 소풍 맞이 메이크업을 하고 왔다. 잔디가 돋아나기 시작한 비탈에 돗자리 펴고 앉아 맥주를 마시는 데 한 친구가 나에게 질문했다. "쟤네 둘 화장하고..

PMS

규방글방 5월 두 번째 : 중독 우울함에도 중독성이 있다지. 우울이 머리통을 잠식하는 기분은 이런 거야. 대개는 내 몸 크기만한 침대 위에서 일어난다. 손수 고른 큰 베개에 머리를 대고 얼마 전에 빨아서 바삭한 이불을 몸에 감고 남쪽으로 난 창에서 오전 11시의 햇살을 받고 있는데도 슬프다. 슬프다는 말은 평소에 잘 쓰지를 않는데도 슬프다. 오랜만에 온몸을 덮친 감정 때문에 열두 시간 붙어있던 매트릭스 위의 허리가 뻣뻣하게 굳어버린다. 기력이 없어서 먹지 않고 먹지 않아서 기력이 없다.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어. 통장 잔고가 적지는 않아도 많지 않고, 내일이나 모레까지 해야 하는 일은 있지만 당장 할 일은 없는 상태여서 약간 긴장감을 느껴야 하는데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다. 색색깔로 현란하게 돌아가는 ..

6반 반장한테 시비 거는 애가 누구야

규방 글방 7월 두 번째 : 부끄러운 일 10대 애들은 좋아하면 대충 시비를 걸고 보는건가. 사랑을 표현할 방법을 몰라서 그랬던 건지 내 성미가 그랬던 건지 모르겠지만 엄마 아빠보다 시간을 많이 보내는 친구들에게 사랑을 느끼는 일이 잦았다. 좋아했던 애들을 대충만 헤아려봐도 손가락 발가락 다 써야 셀 수 있을 정도로 정들면 곧잘 이건 사랑이야!하고 머리속이 소리쳤다. 그 스무 명 중 반장이 두 명 전교회장은 한 명. 그 자리가 만든 후광을 사랑한건 아니었는데 희한하다. 뭘 배우고 있던 날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수학 선생님 때문에 얼굴이 새빨개졌던 건 생각난다. 16살의 나는 지금의 나와 마찬가지로 수업시간에 손을 들고 발표하길 즐기는 학생이었고 선생님의 신변잡기적 잡담에도 눈치를 보지 않고 응수하는 ..

뭔지 몰라서 가지고 있지 않아요.

뭔지 몰라서 가지고 있지 않아요. (역경에 관하여 글쓰기, 2020년 3월 첫 번째)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천상병의 이라는 시를 읽고 있었다. 가르치는 선생님은 경기도 의정부 출신으로 30대 초반의 표준어를 구사하는 남자였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경상남도 최남단인 거제도에 있어 학생이고 선생이고 갯내음 나는 영남 사투리를 썼다. 그러니 이 선생님이 하듯 표준말 하는 것을 직접 들으면 지나치게 다정해서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고 속이 간지러워지던 때였다. 선생님의 고향과 우리 학교의 거리만큼 그의 언어는 멀게 느껴졌다. 그런데 을 읽으면서 선생님이 내뱉은 탄식은 순간 나에게 훅, 하고 끼쳤다. "아, 왜 고통을 겪어야 더 좋은 글이 나오는 건지.“ 수업이 아닌 선생님의 진심이었다. 그도 글을 쓰는 ..

조주빈, 이지민, 강종무의 엄벌을 탄원합니다.

조주빈, 이지민, 강종무의 엄벌을 탄원합니다. 존경하는 재판관님 텔레그램에서 일어난 'n번방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암암리에, 그러나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던 성 착취 사건의 면모가 수면으로 떠올랐습니다. 피고인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잔혹하고 끔찍한 방식으로 피해자의 성을 착취하는 데 앞장섰으며 성 착취 영상을 공유, 판매하는 수법으로 금전적 이득을 취하기까지 했습니다. 피고인의 비인간적인 범죄행위는 국민 대다수를 경악하게 했고 여성, 아동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불안감과 공포심을 불러일으켰으며 피해자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바로 지금, 국민의 안전과 안녕을 위하여 사법부가 결단을 내릴 적기입니다. 지금껏 디지털 성착취에 대한 법안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범죄자들은 솜방망이..

다음 서커스를 향해 가는 길에

다음 서커스를 향해 가는 길에 "다음번에 또 뵙겠습니다." 가능하다면 말이죠. 셜리는 뒷말을 숨기고 달러화 몇 장이 든 봉투를 공연자에게 건넸다. 입장료와 스낵 판매로 번 120달러에서 40달러를 뺀 금액이었다. 남은 금액을 점퍼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천막을 해체하며 주차장을 바라봤더니 오늘 관중의 전부였던 네 명이 무어라 이야기를 하며 한꺼번에 캐딜락에 올라타는 게 보였다. 셜리만큼 젊은 여성들이었다. 천막을 모두 걷어 트럭의 짐칸에 실었다. 운전석에 올라탄 셜리는 테이프를 넣어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다. 아무리 사양산업이라지만 너무한 거 아닌가. 샌프란시스코 지역 축제 부스 전체를 통틀어 가장 적은 관객이 왔던 게 틀림없다. 눈물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지만 괜히 하-이 웨이 투 헬! 하고 트럭 스피커..

온천으로 가는 뽕짝 메들리

온천으로 가는 뽕짝 메들리 10대 이전에 음악을 듣는 방법은 엄마가 창문과 베란다 문을 열고 틀어놓은 심수봉의 구슬 픈 목소리나 80년대 올드팝 테이프를 듣는 것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256메가바이트 짜리 엠피쓰리를 사면서 내 취향의 곡을 모으는 재미를 알았다. 이제는 매달 정기결제되는 스트리밍 사이트를 이용해 1,000여 곡의 음악을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두고 침대 위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는데 여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산업 의 발전으로 개인의 문화 향유 방식이 손쉽게 바뀐 셈이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씨디 플레이 어로 듣던 동방신기 앨범이나 고등학교 때 체육복 아래로 몰래 이어폰 줄을 넣어 야자시간마 다 들었던 사춘기 시절의 힙합 음악으로 언제든지 빠져들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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