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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가지고 싶으세요?

한강을 가지고 싶으세요? 10월 둘째주 서울 출장을 마치고 대전으로 돌아오는 밤기차에 동료와 나란히 앉았다. 열 시가 되기 직전이었다. 큰 건 하나 끝낸 다음이라 후련한 마음에, 연말이 다가온다는 초조한 기분에 한산하고 안락한 평일 열차에서 동갑내기 동기 둘만 진지한 상태였다. "나는 말이지, 예전에는 아파트나 자가용 같은 게 성공을 결정짓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이제는 아니야, 정말로. 평수나 브랜드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내가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집, 마음 편하게 탈 수 있는 차면 돼.“ 나는 일정부분 공감하면서도 여전히 외제차는 갖고 싶다고 답했다. 텔레비전은 연예인들의 일상을 비추며 햇빛이 쏟아지는 널찍한 통유리창 아파트야말로 성공의 척도라는 것을 매일같이 전시했다. 자본주의의 귀족이..

페미니스트 크리에이터로 살아가는데

2020년 6월 작성한 글입니다. 전에도 있었던 일이지만, 요즘 페미니스트 유튜버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구독자수 10만 명이 넘는 유튜버는 휴가를 선언했고, 특정 유튜버 팬들의 사이버 불링으로 유튜브 채널을 그만두겠다는 유튜버도 나타났습니다. 저 또한 크지 않은 채널이지만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페미니스트 유튜버로 살아가고 있는데요. 구독자의 입장에서 봐도 크리에이터의 입장에서 봐도 속상한 상황임은 틀림없습니다. 유명해진다는 것은 사랑을 많이 받음과 동시에 지켜보는 눈이 많아진다는 것이겠지요.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강하다 했던가요, 페미니스트 유튜버들은 입을 모아 지나친 검열로 인한 피로를 호소했습니다. 여기서 검열이란 페미니스트로서 해서는 안될 행동을 하는지, 사서는 안될 물건을 샀는지, 사용..

F E M I NI S M 2020.10.05

타하니의 메이크업 튜토리얼 (Jameela's make up tutorial)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굿플레이스'를 본 사람이라면 타하니 알자밀 역의 자밀라 자밀을 알 것이다. 자밀라는 인스타그램에서 유행처럼 돌았던 'i weigh' 운동의 창시자이며, 기괴한 코르셋을 차는 할리우드 스타들을 공개 저격하여 그 팬들의 비난에 시달리기도 한다. 자밀라는 어떤 모습의 우리든 우리 자신을 긍정하자는 메세지를 강력하게, 자주 어필한다. “겨드랑이 살이 접히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당신의 몸은 문제였던 적이 없습니다. 문제는 항상 가부장제였어요.” 등이 그녀가 주장하는 바다. 자밀라는 며칠 전에 셀프 메이크업 영상을 올렸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에미상 시상식에 참가하기 위해 브라도 하지 않고, 힐도 신지 않고, 파자마 차림으로 10분만에 끝내는 메이크업 영상이었다. 캡쳐에서 볼 수 있듯..

F E M I NI S M 2020.09.22

비오는 날 깜깜한 꿈

환절기 감기몸살에 걸려서 하루종일 잠만 잤더니 꿈을 여러가지 꿔서 혼란스럽다. 몸은 여전히 으슬으슬하다. 정신나간 판타지와 총기 액션이 가미된 가족물 등 기억나는 서너가지 꿈 중에 하나는 안지 얼마 되지 않은 지인이 나오는 꿈이었다. 앞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내게 찜찜한 기분을 남긴 사람이어서 그런지 꿈에서도 그랬다. 그 사람은 나에게 뭔가를 빚져서 과자를 한 봉지 사주고 돌아가려는데 비가 쏟아졌다. 킥보드를 타고 왔길래 비 맞고 갈거냐고 했더니 괜찮다고 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우산을 손에 들려 줬다니 고맙다며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집을 가더라. (그게 가능한가? 킥보드를 안타봐서 모르겠다.) 며칠 후 우산과 나에게 빌린 책을 돌려주러 왔는데 그 책이 생각보다 별로였다고 한다. 자기가 읽기엔 ..

왜 머리 잘랐어?

여름이 끝나가며 업무상 나와 만날 일이 잦아진 A는 가슴까지 오던 머리를 단발로 잘랐다. 7월 중순까지 파운데이션으로 덮였던 얼굴과 끈적거리던 립글로즈를 빛내던 입술은 담백해졌다. 주야장천 대중을 대상으로 탈코르셋 해야 한다고 말해왔으면서 A에게 슬쩍 질문해보았다. "A, 왜 머리 잘랐어?" "어, 그냥 너무 무거워서." A는 쑥스러움 반 멋쩍음 반인 웃음으로 알아들으라는 듯 대답했다. 이 대화는 처음이 아니다. 여섯 달 전에는 친구 세 명과 봄맞이 소풍을 갔다. 커다란 분수가 있는 호수 근처 공원이었다. 나 포함 두 명은 얼굴 편안한 상태, 나머지 두 명은 소풍 맞이 메이크업을 하고 왔다. 잔디가 돋아나기 시작한 비탈에 돗자리 펴고 앉아 맥주를 마시는 데 한 친구가 나에게 질문했다. "쟤네 둘 화장하고..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_리베카 솔닛

를 3년 전에 읽은 이후 다시 잡은 리베카 솔닛의 책. 순진한 냉소주의 p. 114 / 비전문가들도 나쁜 데이터와 더 나쁜 분석을 동원하여 미래의 불가피성, 현재의 불기능성, 과거의 실패를 확신에 차 선언한다. 나는 이런 발언의 바탕에 깔린 심리 상태를 순진한 냉소주의라고 부른다. 이런 심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 가능하다는 감각을 잃게 만들고, 어쩌면 책임감마저 잃게 만든다. p. 123 / 순진한 냉소주의의 대안은 무엇일까? 무엇이든 발생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 우리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 수 없을 때가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앞으로 벌어질 일은 보통 축복과 저주의 혼합일 테고 상당히 긴 시간에 걸쳐서 펼쳐지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역사적 기억은 이런 태도를 지지해준..

PMS

규방글방 5월 두 번째 : 중독 우울함에도 중독성이 있다지. 우울이 머리통을 잠식하는 기분은 이런 거야. 대개는 내 몸 크기만한 침대 위에서 일어난다. 손수 고른 큰 베개에 머리를 대고 얼마 전에 빨아서 바삭한 이불을 몸에 감고 남쪽으로 난 창에서 오전 11시의 햇살을 받고 있는데도 슬프다. 슬프다는 말은 평소에 잘 쓰지를 않는데도 슬프다. 오랜만에 온몸을 덮친 감정 때문에 열두 시간 붙어있던 매트릭스 위의 허리가 뻣뻣하게 굳어버린다. 기력이 없어서 먹지 않고 먹지 않아서 기력이 없다.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어. 통장 잔고가 적지는 않아도 많지 않고, 내일이나 모레까지 해야 하는 일은 있지만 당장 할 일은 없는 상태여서 약간 긴장감을 느껴야 하는데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다. 색색깔로 현란하게 돌아가는 ..

6반 반장한테 시비 거는 애가 누구야

규방 글방 7월 두 번째 : 부끄러운 일 10대 애들은 좋아하면 대충 시비를 걸고 보는건가. 사랑을 표현할 방법을 몰라서 그랬던 건지 내 성미가 그랬던 건지 모르겠지만 엄마 아빠보다 시간을 많이 보내는 친구들에게 사랑을 느끼는 일이 잦았다. 좋아했던 애들을 대충만 헤아려봐도 손가락 발가락 다 써야 셀 수 있을 정도로 정들면 곧잘 이건 사랑이야!하고 머리속이 소리쳤다. 그 스무 명 중 반장이 두 명 전교회장은 한 명. 그 자리가 만든 후광을 사랑한건 아니었는데 희한하다. 뭘 배우고 있던 날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수학 선생님 때문에 얼굴이 새빨개졌던 건 생각난다. 16살의 나는 지금의 나와 마찬가지로 수업시간에 손을 들고 발표하길 즐기는 학생이었고 선생님의 신변잡기적 잡담에도 눈치를 보지 않고 응수하는 ..

뭔지 몰라서 가지고 있지 않아요.

뭔지 몰라서 가지고 있지 않아요. (역경에 관하여 글쓰기, 2020년 3월 첫 번째)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천상병의 이라는 시를 읽고 있었다. 가르치는 선생님은 경기도 의정부 출신으로 30대 초반의 표준어를 구사하는 남자였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경상남도 최남단인 거제도에 있어 학생이고 선생이고 갯내음 나는 영남 사투리를 썼다. 그러니 이 선생님이 하듯 표준말 하는 것을 직접 들으면 지나치게 다정해서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고 속이 간지러워지던 때였다. 선생님의 고향과 우리 학교의 거리만큼 그의 언어는 멀게 느껴졌다. 그런데 을 읽으면서 선생님이 내뱉은 탄식은 순간 나에게 훅, 하고 끼쳤다. "아, 왜 고통을 겪어야 더 좋은 글이 나오는 건지.“ 수업이 아닌 선생님의 진심이었다. 그도 글을 쓰는 ..

누가 영웅인가

누가 영웅인가 1997년 말 IMF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90년대는 '호시절' 이었다. 고금리, 고성장, 일자리도 많고 출생률도 높으니 국가와 국민 모두 걱정이 없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를 떠돌아다니는 글에는 90년대에 대한 향수가 짙다. 당시 초등학생들의 작은 손에 들려있던 아이스크림 종류부터 압구정 길거리 패션, 힙합 바지에 알 작은 선글라스를 끼고 무대를 누비던 가수들의 세기말 음악까지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80년대의 이념 싸움에서 승리한 민중이 자유 민주주의를 만끽하는 동안 경제와 문화는 호황을 누렸지만, 인권 사상은 아직 불황이었다. 1992년에 태어나 이 시절을 겪은 나는 아파트 앞마당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내 모습을 그릴 수 있다. 새로운 세기가 오기 전까지 초등학교 입학 전의 삶이..

F E M I NI S M 202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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